아름다운 동행

누군가를 위해 달린다는 것,
팀 호이트가 전하는 사랑의 의미

글. 편집실

위대한 여정의 시작

딕 호이트 부부는 1962년 아들 릭 호이트를 낳았을 때 하늘이 무너져 내려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태어나기 직전 탯줄이 릭의 목을 감았고 뇌에 산소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결국 뇌성마비 진단을 내렸고, 릭은 사실상 식물인간이며 보호시설로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딕 호이트 부부는 아들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포기할 수 없었다.
릭이 10살이 되던 1972년 한 대학의 공학자들이 릭을 위한 컴퓨터를 만들었다. 고 스티븐 호킹 박사와 비슷한 방식으로 릭도 머리를 움직여 원하는 글자를 골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자신의 부모에게 “안녕”이라는 인사를 건넸다.
팀 호이트의 시작은 단순했다. 중증 뇌성마비로 인해 계속해서 정적으로 앉아 있어야 했던 아들 릭이 달리는 것을 원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버지 딕은 곧바로 휠체어를 끌고 밖을 나섰다. 살면서 처음이었다. 위험하다고 생각했기에 생각조차 안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무작정 휠체어를 뒤에서 밀면서 달렸다. 휠체어에 앉아서 바람에 머리칼이 휘날리고 있는 자신의 아들의 얼굴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환한 미소가 피어있는 것을 본 딕은 이때 달리기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혼자가 아닌 아들과 함께하는 달리기였다.




포기하지 않았던 사랑의 기록

팀 호이트는 1977년부터 2016년까지 40년간 마라톤 72차례, 트라이애슬론 257차례(철인코스 6차례), 듀애슬론 22차례 등 총 1천 120개 대회를 완주했다. 보스톤에서만 32차례 완주했다. 1992년에는 45일에 걸쳐 자전거와 달리기로 미국 대륙을 횡단(총 6천 10km)하기도 했다. 세계 최강의 철인들 틈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실은 고무배를 허리에 묶은 채 바다 수영을 했고, 아들이 앉은 특수의자를 장착한 자전거를 탔다. 아들 없이 출전한다면 놀라운 기록이 나올 거라는 주위 사람들 반응에 아버지는 “릭이 아니라면 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첫 번째 완주에 16시간 14분이 걸렸던 마라톤 최고기록은 2시간 40분 47초까지, 철인 3종 경기 기록은 13시간 43분 37초까지 각각 단축됐다.

처음엔 불편한 눈으로 바라보던 이들은 박수로 응원하기 시작했다. 자선재단 팀 호이트의 회원이 점점 늘었고, 2013년에는 보스턴 마라톤 출발선 인근에 호이트 부자의 동상이 세워졌다.
딕 호이트는 만 73세이던 2013년 보스턴 마라톤을 끝으로 장거리 대회 출전은 자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폭탄테러 사건으로 대회가 중단됐고 결국 2014년 다시 출전, 7시간 37분 33초 기록으로 완주하며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버지 딕 호이트는 2021년 3월 17일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은 그가 심장 질환을 앓았다고 전했다. 이어 2023년 5월 22일 아들 릭 호이트 또한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함께’라는 마음이 주는 위로와 용기

팀 호이트와 그의 아버지 딕 호이트의 삶은, 단순한 마라톤 완주 기록 그 이상이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불가능이라 불렸던 일을, 사랑과 믿음으로 가능하게 만든 두 사람의 여정. 그들의 달리기는 누군가를 앞세우거나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달릴 수 있도록 등을 내어준 사랑의 이야기다.
딕 호이트는 아들에게 세상의 경계가 어디인지 가르치기보다, 아들이 꿈꾸는 세상이 어디까지 펼쳐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팀은 그런 아버지를 통해, 삶은 비록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지라도 누군가의 손을 잡고 함께 달릴 때 더 크고 따뜻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세상에 증명했다.

팀과 딕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질문이 남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나는 어디까지 달릴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때때로, 누군가가 내 곁에서 “괜찮아, 내가 널 끝까지 데려가 줄게”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팀 호이트를 통해 우리가 배울 교훈이 있다. 사랑은 누군가를 위해 앞서 달리는 일이 아니라, 함께 끝까지 완주해주는 마음이라는 것을.